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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창 SLR/DSLR로 사진 찍던 시절에도 무수히 보았던 질문인데, 얼마전 카메라 사이트에 갔더니 아직도 이런 류의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필름SLR에 50mm렌즈를 끼워서 찍은 사진과 1.6배 크롭되는 DSLR에 35mm렌즈를 끼워서 찍은 사진은 원근감이 같은가 다른가?'
이에 대한 답변도 참으로 다양한데... 망원에서의 압축 효과 때문에 다르다는 답변도 있고, 거의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는 답변도 있고, 왜곡때문에 다르다는 답변도 있고 여튼 가지가지이다.
그러나 답은 하나뿐이다.
두 사진의 원근감은 같다.
필름카메라에 50mm를 끼운 것과 크롭바디에 35mm를 끼워서 환산화각이 비슷해지는 것과는 애초에 아무 상관없이, 무슨 바디에 무슨 렌즈를 끼우든간에 같은 자리에서 찍으면 원근감은 무조건 같다. CONTAX G2에 홀로곤렌즈를 끼워서 황홀한 광각으로 찍든, 1000mm 초망원렌즈를 써서 미친듯이 당기든 원근감에는 눈꼽만큼의 변화도 없다.
원근감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멀고 가까운 거리에 대한 느낌'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나(관찰자)로부터 가까이 있는 물체가 이만큼의 크기로 보이고, 멀리 있는 물체는 저만큼의 크기로 보일 때 이 크기의 차이로 인해 가깝고 멀고 하는 느낌이 나는 것을 의미한다.
1) 즉, 다음과 같이 나, 고양이, 집이 위치하며, 눈앞에 자를 대고 고양이와 집의 길이를 재면 둘 다 5cm로 보이는 상황이라고 하자. 내가 보는 고양이의 크기 : 집의 크기의 비율은 현재 1:1이다.
나----------------고양이-----------------집
2) 이제 다음과 같이 고양이가 내 쪽으로 가까와지면 내가 보는 집의 크기는 여전히 5cm이지만 고양이의 크기는 6cm, 7cm...20cm로 자꾸자꾸 커진다. 고양이가 20cm로 보이는 크기가 되면, 내가 보는 고양이의 크기 : 집의 크기의 비율은 4:1이다.
나-----고양이---------------------------집
가까이 있는 물체는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보이는 효과 (즉 원근감) 가 강조되며, 실제로는 작은 물체라도 크게 보이게 된다. 이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면 원근감이 강조된 사진이 되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주로 광각렌즈를 사용하게 된다. (망원렌즈로 찍어도 원근감 강조는 똑같으나, 화각이 좁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물체는 아주 일부밖에 안 보이고, 아주 가까이는 초점도 안 맞을 뿐더로, 배경도 조금밖에 안 보이니까 원근감이 강조된 것이 거의 드러나질 않는다.)
그래서 '광각렌즈를 사용하면 원근감이 강조된다' 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된 것이다. 광각렌즈가 원근감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원근감 강조를 위해 가까이 찍을 때 화면에 많은 것을 담기 위해 광각렌즈를 사용하는 것 뿐이다.
3) 반면 고양이가 나에게서 멀어져서 집 쪽으로 가면 내가 보는 고양이의 크기 : 집의 크기의 비율은 0.9:1, 0.8:1......과 같이 변하다가 결국 고양이가 집 벽에 가서 붙게 되면 0.05:1 (이것은 예로 든 값 - 고양이의 길이가 50cm이고 집의 길이가 10m일 때의 실제 길이의 비율임) 가 된다.
나 -------------------------------- 고양이 - 집
이렇게 되면 원근감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원근감이 없어지게 되어, 실제로 작은 물체는 그대로 작게 보이고 실제로 큰 물체는 그대로 크게 보이게 된다. 이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면 원근감이 거의 없는 사진이 되고, 이렇게 멀리서 찍을 때는 주로 망원렌즈를 사용하게 된다. 광각렌즈로 찍어도 원근감 없음은 동일하나, 망원렌즈가 찍은 것과 동일한 화각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사진 가운데 조금만 남기고 다 오려낸 다음 확대해야 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필름의 해상력의 한계상 화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처음부터 망원렌즈를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망원렌즈는 원근감을 감소시키는 공간 압축 효과가 있다'라고 하는데 이 역시 망원렌즈에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 - 피사체 A - 피사체 B가 일렬로 있고, A와 B의 실제 크기가 같고, 사람-A 사이의 거리가 10m, 사람-B 사이의 거리가 15m라고 할 때 (즉 B는 A보다 5m 뒤에 있음) 사람으로부터 A의 거리 : 사람으로부터 B의 거리의 비율은 10:15 즉 1:1.5로서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거리의 비가 바로 원근감이다. A와 B의 실제 크기가 같음에도 A는 B보다 훨씬 크게 보일 것이다.
이제 사람이 A,B로부터 아주 멀어져서, 사람-A의 거리가 100m, 사람-B의 거리가 105m가 되면 (여전히 B는 A보다 5m 뒤에 있음) 각 거리의 비율은 100:105 즉 1:1.05가 된다. 원근감은 앞의 1:1.5보다 훨씬 줄어들었으며, 사람이 보는 A의 크기와 B의 크기 차이는 이제 거의 없어진다. 원근감이 약화되었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압축 효과이다.
망원 렌즈의 역할은, 압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만큼 사진찍는 사람을 피사체들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지게 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망원렌즈가 공간압축 효과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원근감의 변화는 오로지 관찰자와 피사체들간의 거리 변화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위에 든 나-고양이-집 예에서 원근감이 변하려면 내가 보는 고양이의 크기와 집의 크기의 비율 자체가 변해야 되는데 이것은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내가 고양이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상태에서 원근감이 강조된 사진을 얻었을 때 (광각렌즈 사용)의 고양이의 크기와 집의 크기의 비율이 A:B라면, 이 자리에서 다시 망원렌즈를 써서 멀리 있는 집이 화면에 꽉 찰 정도로 확대된 사진을 얻은 경우, 가까이 있는 고양이는 엄청나게 확대되어 한 화면에 담길 수가 없게 되었을 뿐이고, 여러번 찍어서 붙이면 역시 고양이의 크기와 집의 크기의 비율은 A:B로 변함이 없다.
만약 같은 곳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여러 가지 원근감으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노벨상이라도 타지 않을까?
또한, '광각으로 찍으면 주변 왜곡 때문에 망원으로 찍은 것과 원근감이 다르다', '광각과 망원은 심도가 다르다' 등의 이야기는 원근감의 정의에다 렌즈마다의 특성인 왜곡을 끼워 넣거나, 원근감과 전혀 상관없는 심도를 끼워 넣거나 해서 발생하는 오해일 뿐이다.
사람 얼굴을 광각렌즈로 아주 가까이서 찍으면 얼굴이 동그랗게 나오면서 원래 얼굴과 좀 다르게 나오게 되는데 이것도 광각렌즈로 찍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서 찍기 때문에 카메라-코 : 카메라-귀 등 카메라와 얼굴 각 부분간의 거리의 비율의 차이가 커지면서 원근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서 찍으려면 가까이에서도 초점을 잡을 수 있고 화각도 넓은 광각렌즈를 써야 하기 때문에 광각렌즈를 쓰는 것이다. 망원렌즈로는 그렇게 가까이에서는 초점도 잡을 수 없고, 만약 초점이 잡힌다 하더라도 얼굴의 극히 일부분만 화면에 담기기 때문에 이 효과를 느낄 수가 없을 뿐이다. 만약 아주 가까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망원렌즈가 있고, 이를 이용해서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수평이동시키면서 아주 많이 찍어서 적당히 잘라붙이면 원근감이 살아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으나 - 카메라 위치를 이동시키면서 찍었으므로 당연히 모든 사진들이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잘라붙일 때 어긋나므로 이것도 보정해 주어야 함 - 이런 짓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